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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독서

[니체] 자신의 '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길은 보이지 않는다

by 생각하는달팽이 2015. 7. 27.

수많은 방법론을 담은 책을 읽어도, 유명한 경영자나 억만장자의 성공 노하우를 배워도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식과 방법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먹는 약 하나도 그 사람의 체질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타인의 삶의 방식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자신의 '왜?'에 대하여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왜 그렇게 되고 싶은지, 왜 그 길을 가고자 하는지 . 그 같은 물음에 깊이 사고하지 않고 명백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왜?' 라는 의문에 명백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후의 모든 것은 매우 간단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곧 알 수 있다. 일부러 타인을 흉내 내면서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자신의 길이 눈앞에 명료히 보이기 때문에 이제 남은 일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뿐이다.

- 니체의말 발췌 -


 그렇다. '왜?' 라는 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리면, 조금더 집중할 수 있다.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만일, '왜?'라는 것에 대한 답이 자기합리화에 빠진다면, 그 길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걷는게 좋을거라고 생각된다. 생각의 여유를 주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왜?' 라는 답을 내리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더 큰 시간들을 잃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왜?' 라는 물음은 우리가 보다 더 깊은 본질. 우리가 우리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냥' 이라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냥'이라는 이유에 대한 '왜?'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내가 원해서' 일 것이다. 그럼 여기서 다시 '왜?'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내가 왜 원하는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본질'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건축가 루이스 칸이다. 그는 사물의 본질. 건축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노력했고. 그 중심에 사람을 두었다. 건축은 사람이 있는 공간이다. 그가 생각한 건축에서의 '본질'은 그러했다. 그러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각자의 '본질'이 있을 것이다. 어떤 '본질'이 정의이다. 어떤 '본질'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그 각각의 '본질'에 대하여 존중하고 이해해본다면, 좀 더 깊은 '본질'을 향해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왜?' 라는 물음에 깊이 사고를 하고 명백히 파악한다면. 자신의 길이 보다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필자 또한 그 길을 찾기위해 '왜?' 라는 의문에 대한 되돌이표를 찍고 있다.


'왜?' 하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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