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7. 02:04ㆍEtc/독서
수많은 방법론을 담은 책을 읽어도, 유명한 경영자나 억만장자의 성공 노하우를 배워도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식과 방법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먹는 약 하나도 그 사람의 체질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타인의 삶의 방식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자신의 '왜?'에 대하여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왜 그렇게 되고 싶은지, 왜 그 길을 가고자 하는지 . 그 같은 물음에 깊이 사고하지 않고 명백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왜?' 라는 의문에 명백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후의 모든 것은 매우 간단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곧 알 수 있다. 일부러 타인을 흉내 내면서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자신의 길이 눈앞에 명료히 보이기 때문에 이제 남은 일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뿐이다.
- 니체의말 발췌 -
그렇다. '왜?' 라는 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리면, 조금더 집중할 수 있다.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만일, '왜?'라는 것에 대한 답이 자기합리화에 빠진다면, 그 길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걷는게 좋을거라고 생각된다. 생각의 여유를 주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왜?' 라는 답을 내리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더 큰 시간들을 잃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왜?' 라는 물음은 우리가 보다 더 깊은 본질. 우리가 우리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냥' 이라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냥'이라는 이유에 대한 '왜?'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내가 원해서' 일 것이다. 그럼 여기서 다시 '왜?'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내가 왜 원하는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본질'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건축가 루이스 칸이다. 그는 사물의 본질. 건축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노력했고. 그 중심에 사람을 두었다. 건축은 사람이 있는 공간이다. 그가 생각한 건축에서의 '본질'은 그러했다. 그러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각자의 '본질'이 있을 것이다. 어떤 '본질'이 정의이다. 어떤 '본질'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그 각각의 '본질'에 대하여 존중하고 이해해본다면, 좀 더 깊은 '본질'을 향해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왜?' 라는 물음에 깊이 사고를 하고 명백히 파악한다면. 자신의 길이 보다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필자 또한 그 길을 찾기위해 '왜?' 라는 의문에 대한 되돌이표를 찍고 있다.
'왜?' 하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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